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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대림미술관, 그랑핸드, 그라운드시소 서촌, 플래시커피, 정부서울청사 본관, 경복궁 광화문

어바너드 2023. 1. 23.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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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미술관(서울 종로구 통의동 35-1): https://www.daelimmuseum.org/

 

D MUSEUM | DAELIM MUSEUM | 구슬모아당구장

 

www.daelimmuseum.org

 

 

그랑핸드 서촌(GRANHAND, 서울 종로구 통의동 35-106): 향수

 

 

그라운드시소 서촌(서울 종로구 통의동 35-17): https://groundseesaw.co.kr/

 

그라운드시소

Make Inspiration Real. 지금 그라운드시소엔 어떤 영감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그라운드시소 서촌, 성수, 명동의 전시 정보를 확인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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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노니머스 프로젝트: https://groundseesaw.co.kr/product/%EC%96%B4%EB%85%B8%EB%8B%88%EB%A8%B8%EC%8A%A4-%ED%94%84%EB%A1%9C%EC%A0%9D%ED%8A%B8/

 

어노니머스 프로젝트 — 그라운드시소

관람 안내 전시 기간 2022.11.25 – 2023.04.02 관람 시간 10:00 – 19:00 (입장 및 매표소 마감 18:00) 티켓 가격 성인/아동청소년/영유아 공통 1인 15,000원 (2022.11.25 ~ 2023.04.02 예매 시까지) 그라운드시소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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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시 커피 경복궁점(서울 종로구 적선동 93-3)

 

 

정부서울청사 본관

-정부서울청사는 행정기구와 조직 확대에 따른 청사 공간 부족, 노후화로 인한 유지보수 예산 증가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행정 능률과 대민서비스를 향상하고자 건립한 대한민국 최초의 정부종합청사이다. 당시 중앙행정기관은 1948년 대한민국 수립 시부터 중앙청 건물(1996년 철거)을 청사로 사용했는데, 정부 규모가 확대되면서 몇 개 부처는 임차건물을 사용해야 할 정도로 사무 공간 부족 문제가 심각해졌다. 행정 효율성 측면에서도 신청사의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었고, 1966년에 현 위치로 부지를 결정하고 정부종합청사(현 정부서울청사 본관) 건립 계획을 수립하였다.

 

청사의 입지는 중앙청 건물과의 접근성과 과거 조선시대 육조거리였다는 역사적 의미까지 고려하여 결정하였고, 당시 다양한 신공법을 적용한 설계로 1967년 7월에 착공하여 1970년 12월에 준공하였다. 창성동 별관은 정부 기능의 다원화로 행정기구가 더욱 확대됨에 따라 청사 공간을 확보하고자 1981년 10월 당시 총무처에서 매입하여 청사로 활용하고 있으며, 2005년에 리모델링을 실시하였다. 2018년부터는 내진성능 확보 등을 위해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다. (출처: 행정안전부 정부청사관리본부)

 

 

경복궁 광화문(景福宮 光化門)

 

정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에 있는 조선전기에 세워진 경복궁 남쪽의 궁궐건물. 궁문(宮門).

 

개설

조선 왕실과 국가의 권위를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문으로, 석축기단(石築基壇)에 3궐(三闕)의 홍예(虹霓)를 만들고 그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형식의 중층집으로 우진각지붕을 얹었다.

 

역사적 변천

1395년(태조 4) 경복궁을 창건할 때 정전(正殿)인 근정전과 편전(便殿)인 사정전·침전인 경성전(慶成殿)·연생전(延生殿)·강녕전(康寧殿) 등을 지어 궁궐의 기본구조를 갖춘 다음, 1398년에 그 둘레에 궁성을 쌓은 뒤 동·서·남쪽에 성문을 세우고, 동문을 건춘문(建春門), 서문을 영추문(迎秋門), 남문을 광화문이라 이름 지었다.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중건 당시인 1865년(고종 2)에 다시 짓게 하였다. 

 

1927년에는 일제의 문화말살정책으로 인해 경복궁의 여러 곳이 헐리고 총독부청사가 들어서면서 건춘문 북쪽으로 옮겨졌다.이후 광화문은 6·25사변 때 폭격을 맞아 편전인 만춘전(萬春殿)과 함께 불타버렸다. 1968년에 석축 일부가 수리되고 문루는 철근콘크리트구조로 중건되었다가 2006년 들어, 경복궁 복원공사의 일환으로, 철거·해체되었다. 이후 광화문 이전 공사가 개시되어 2010년 8월 완공되었다.

 

내용

광화문은 석축기단의 세 곳에 홍예문(虹霓門)을 내어 3문형식을 취하였는데, 가운데 칸은 높이 17척 5촌, 너비 18척이고, 양 옆칸은 높이 16척, 너비 14척 5촌씩이다. 포작(包作)은 안 7포, 밖 5포로 출목수로는 안 3출목, 밖 2출목인 다포식을 채택하였다.1층 기둥높이는 7척이고, 기둥 간격은 앞면은 가운데가 27척, 양옆이 25척씩이고, 옆면은 10척씩이다. 1층의 기둥 사이는 개방하였고, 2층에는 판문을 달아 열고 닫게 하였다.

 

내부살미는 조선 말기에 흔히 쓰던 운궁(雲宮: 살미 내부의 중첩된 부분)을 사용하였고, 내목도리(內目道里) 아래에 장화반(長花盤: 창방과 장여 사이에 길게 놓인 화반)을 놓았으며 공포 사이에는 포벽을 마련하였다. 가구수법은 아래층 대들보가 고주(高柱)에서 합보 형식을 하고 대들보와 위층 마루 사이에 공간을 두었다. 아래위층 처마는 모두 겹처마이고 지붕의 각 마루에는 취두·용두·잡상들을 배치하였다.

 

특징

궁궐이라는 말이 궁과 궐의 복합어이며, ‘궐’의 형태는 높다란 석대 위에 2층 누각을 세운 것이 일반적이었음에 비추어, 조선시대 궁궐의 정문 가운데 유일하게 궐문 형식을 갖추고 있다.

 

의의와 평가

조선시대의 정궁(正宮)의 정문(正門)으로서 의의가 있다. 2010년 8월 완공된 광화문은 원래 위치와 모습을 되찾았으며, 최대한 원형대로 보존된 광화문은 조선 말기의 궁궐건축을 대표하는 뛰어난 건물로서 위상을 지닌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경복궁광화문(景福宮光化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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